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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Exhibit Archive

코리안 랩소디 Korean Rhapsody | 2011

코리안 랩소디 Korean Rhapsody | 2011


시간 : 2011.3.17— 6.5

장소 : 리움미술관

 


2011년 6월, 코리안랩소디를 관람하고 적은 글

리움미술관에서는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라는 소제목을 가진 기획전 ‘코리안 랩소디’가 열리고 있다. ‘코리안 랩소디’와 상설 전시를 함께 보기로 했다. 이른바 고미술과 현대미술 가로지르기. 시간의 기록의 편린들을 천천히 따라가 보기로 했다.

 

▼ 상설전시

리움미술관은 우리나라 고미술품 전시를 위한 건물과 한국과 외국의 근·현대 미술품 전시를 위한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리움미술관의 건축은 세계적인 건축가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쿨하스의 작품으로, 한 공간 안에 세 작가의 개성이 조화롭게 표현된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도심 속 고요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리움미술관의 분위기와 독특한 조형성을 지닌 미술관 건축물은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었다. 특히 한국 미술의 고고한 아름다움, 멋을 느끼기에 특히 우리나라 고미술품이 전시된 MUSEUM 1은 탁월한 공간이었다. 공간 내의 전체적인 색조가 차분하고 한국의 미를 담아내기에 적절한 공간이었다. 움미술관은 전시한 유물의 상단에 은은한 조명을 설치하되, 사면에 유물을 둘러싸면서 굉장히 많은 조명을 설치함으로써 작품에 골고루 빛을 주었다. 전시 공간 이 어두웠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어둑한 공간 내에 사면에서 은은한 조명을 통해 비치는 유물에 대해 집중할 수 있었고, 조용하고 침착한 분위기에서 감상할 수 있어 단아한 멋을 감상하기에 적절했다.

리움미술관에는 선사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시대별 대표작을 아우르고 있는 국보 36점, 보물 96점 등의 고미술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모란도 10곡 대병의 이국적이고 참신한 색조에 놀랐다. 모란도 10곡 대병에 쓰인 청색은 우리나라에선 선호되지 않았던 색이라 배웠는데 실제로 쓰인 모습은 굉장히 세련되어 놀라웠다. 화성능행도의 그림은 투시법을 모르는 상태임에도 시선이 어색하지 않게 표현되었고 독특했다. 환어행렬도를 볼 때는 그림에 그려진 길을 따라 작품의 상단 부분에서부터 행렬을 따라 내려가며 묘사된 부분들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그림이 유리 벽 안에 멀리 배치되어 있어 세세한 부분을 관찰할 수 없었던 점은 아쉽다. 정조 어필의 손글씨는 정조의 성품이 묻어나는 듯했다. 불교 미술 부분에서 본 불상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분청사기의 그려진 문양에선 인간적인 자유분방함과 대담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고미술에서 사소해 보이는 유물 하나하나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는 선인들의 빼어난 미감, 여유와 낭만을 만나는 일은 감동이었다. 고미술을 지나 이번에는 근현대의 흔적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 코리안랩소디

코리안 랩소디, rhapsody는 광상곡, 광시곡(狂詩曲)이라고도 한다. 일종의 자유 형식에 의한 기악곡으로서 대부분 민족적 또는 서사적인 성격을 띤다.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짧은 서사시를 가리켰으나, 음악의 형식으로서는 특히 19세기에 환상곡 풍의 자유로운 형식이 되었고 다른 예술 분야에선 자유로운 형식의 서사시를 가르킨다. ‘코리안 랩소디’는 20세기를 한국 사회를 시각 문화 중심으로 되돌아보는 기획전이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기록, 그 단편들의 모음을 서사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전시 제목이라 추측할 수 있다. 특정 작가나 작품을 내세우기보다는 한국의 기억 조각을 노래했고, 기억의 터 역사의 현장을 몸소 느끼고 작가와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마 전 모 신문 칼럼에서 영국 어타임스 서울특파원인 앤드루 새먼은 한국 근현대사는 드라마라고 얘기했다. 한 노인의 생애를 가상한 이야기 자체가 격변의 대한민국 근현대사라는 것이다. 조선 왕조의 몰락에서부터 일제 침략, 전쟁과 분단,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파편과도 같은 풍부한 감성 조각들이 역사의 편린과 뒤얽힌 것이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의 모습을 반영하듯 코리안 랩소디는 그야말로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였다. 개항 이후 구한말부터 현재에 이르는 100년간의 한국 근현대사의 사건들을 미술 작품과 다큐멘트 영상 혹은 사진 기록들로 구성했다. 기획자의 말에 의하면 한국 근현대사의 다양한 해석과 입체적인 감상이 가능하도록 미술사의 연대기적 전시연출보다는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차용해 이미지를 병치, 대립시켜 통시적인 의미를 산출해내어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데 강점을 두었다고 한다.

‘코리안 랩소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는 근대의 표상, 2부는 낯선 희망이란 주제로 기획되었다. 1부 근대의 표상에서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정연두의 ‘구보씨의 일일’과 조덕현의 ‘리플렉션 리플렉션’이었다. ‘구보씨의 일일’은 1890년대 한성의 광화문 거리’와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총독부가 들어선 ‘경성의 광화문 거리’를 축소 재현한 모형 세트를 세밀하게 활용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1930년대 박태원이 쓴 소설의 제모고가 내용을 차용한 이 작품은 구보씨가 1934년 경성에서의 하루를 시작하여 한 카페 앞에서 1890년대의 한성으로 돌아가 골목길을 거닐다 다시 카페를 기준으로 다시 현대시점인 1934년으로 돌아오면서 두 시대의 풍경을 대조시킨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객관적인 사실을 보여주는 역사가 아닌, 구보씨의 시선을 통한 개인적인 관점을 보여주는 역사적 풍경을 재현하고 있다.(코리안 랩소디 도록, 리움미술관, 51p) ‘리플렉션 리플렉션’은 작가가 흑백사진에서 발견한 1930년대 신여성의 모습과 동시대 모던걸 의상을 입은 자신의 딸을 한 화면에 사실적으로 합성한 그림에다 거울을 설치하여 그 이미지가 무한 반복되게 한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 어떤 인물인지 몰랐을 때도 한눈에 과거의 인물과 현재의 인물이 한 화면에 존재하고, 이러한 이미지가 어떤 서사적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듯, 평면에서부터 길게 공간으로 연결되는 옷자락이 시간과 공간의 의미를 해체하는 듯했다. 그리고 거울에 반사되어 무한히 반복되는 이미지는 과거와 지금이 끊임없이 되돌려지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2부 낯선 희망에선 김동유 작가가 김구의 이미지들이 모아 이승만의 얼굴을 표현했다. 김동유는 ‘이중 얼굴’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는데, 이는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그럴듯한 의미로 연결되는 두 인물의 얼굴을 한 화면에 담아내는 형식이 주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코리안 랩소디 도록, 리움미술관, 128p)

 

무지한 스승”에서는 ‘지적 해방’을 그 자체를 자유롭게 했을 때 본질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가르쳐 주지 않아도 배울 수 있고, 스스로 깨우칠 힘을 우리는 갖고 있다. 그리고 지속해야 우리는 해낼 수 있다. 랑시에르의 개념에서 중요한 내용은 ‘시간들을 함께 놓기’이다. 랑시에르는 시대에 일관된 흐름이 있다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시간 ‘안에’ 머무느냐, 시간 ‘바깥으로’ 이탈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들’을 어떻게 재편성하느냐의 문제에 주목하게 된다. 연관 짓기, 잇기의 대상은 무한하다. 누군가의 오래된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흔적을 남긴 사람들의 생각이 보이고 숨결이 들린다. 그들의 일상이 하나 둘 전해오고 거기 그들의 애환이 겹쳐서 나타난다. 나아가 그들의 미적인 감각까지. 그래서 흔적을 엿보는 것은 좋은 경험이다. 연대기식 나열을 피해 역사와 기억의 몽타주 기법에서 필요했던 것은 사건 위주의 정치사는 아니다. 크리에이터에게 동시대성은 곧 반시대성이기에 ‘시간들’을 제공하는 측면에서 이러한 전시의 기획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