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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Exhibit Archive

박수근 | 우리의 화가 박수근 | 1999

박수근 | 우리의 화가 박수근


시간 : 1999.7.16  — 9.19

장소 : 호암갤러리


 

120여점의 유화와 종이작품으로 구성된 이 전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박수근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전시였다. 겹겹이, 아주 두텁게 바른 재질감 아래 희미한 선과 색채는 공간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그 공간을 좇다보면 나무가 그려져 있기도 하고 동물이나 나무가 그려져 있기도 했다. 아직도 돌을 쪼아 선을 만든 듯한 독특한 표현과 긴장감이 기억에 남는다.  


뿌리깊은 나무 창간호에는 김영주가 "이중섭과 박수근"이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작업 일화에 대해 쓴 글이 실려 있다. 다음은 김영주가 박수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서술한 부분 중 일부이다. 

서울을 수복하고 나서의 그 이듬해의 봄이라고 기억된다. 명동의 미술재료상점인 서울화방에서 주인 민 씨의 소개로 박수근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염색한 허름한 군복 웃옷 호주머니에서 꺼낸 그의 손은 유별나게 크고 두리뭉실했다. 체격도 육중했다. 얼굴고 둥글고 큰 편이었다. 그러한 몸매에서 잔잔하고 소탈한 냄새가 풍겨 첫 인상이 깊었다.
이러한 첫 인상은 그 뒤에 그와 친히 지내면서도 바뀌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사귐에서나 자신의 삶을 꾸림에서나 늘 진실했다. 그의 가끔 빛을 쏘는 눈동자에는 작은 일에까지 마음을 쓰는 생각의 깊이와 폭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의 이러한 눈도 죽는 날까지 바뀌지 않았다. 정과 외곬의 신념이 겹친 그러한 눈으로 그는 그림을 그렸다. (중략) 독학을 한 그는 미술계의 계보로 미루어 보아서도 그렇고, 작품 경향도 아주 독보적이어서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와 만난 나는 선험적인 인간 실존의 개념이 예술가로서 걸어가야 할 시간과 공간이 미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이야기했다. 
(중략) 중섭과 수근의 경우에는 서양화의 입체적 원근감의 표현 방법이, 그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었다.
(중략) 그의 화면에는 공간 의식에 대한 저항 정신이 굳게 깔려 있다. 돌을 쪼는 듯한. 나무를 파는 듯한 단단한 긴장감이 감돈다. 그 긴장감은 움직이는 상태가 아니라 정지된 상태에서 은은하게 펼쳐진다. 정지된 상태,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이냐를 응시하는 사색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에서 진폭이 생기고 생명감이 움터 우리들을 영원으로 이끌어간다. 영원은 고요함으로 바뀌어 공간에 메아리친다. 수근의 예술에 깔려 있는 매력은 공간의 아름다움에서 찾아야 한다.
한 화가가 소재를 고르거나 만드는 일은, 자라온 과정, 환경과 이념, 예술 철학과 인간적인 면의 체질에 달려 있다. 수근이 생활 장면에서 소재를 고른 것은 순전히 그의 체질에서 반영된 하나의 방법이다. 그는 이러한 소재를 통해서 자신이 설 땅과 그것을 감싸고 있는 공간을 추구하였다.
그의 치밀한 구도를 보라. 아류들이 저지르기 쉬운 조작된 구도는 특히 그의 만년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다. 치밀하게 계산되었으면서도 꾸민 데가 보이지 않고, 여유 있는 배합에서 위치의 경영에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성품처럼 화면의 내용은 겸손하고 다정스럽다.
(중략) 수근은 현실의 장면에서 자신이 처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서 공간 감정을 통해 이 일을 성숙시키는 과정에 서 있었다.